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차 세계 대전/관련 어록 (문단 편집) == 기타 어록 == > '''역사상 이번 전쟁처럼 독재와 억압을 일삼는 세력과 자유, 인권의 편에 선 세력이 정면으로 대결했던 사례는 없었다.''' [[https://www.eisenhowerlibrary.gov/eisenhowers/quotes|#]] > ---- > -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1943년 4월 아들 존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전쟁의 양상이 명백하게 선과 악의 대결 구도로 나뉘었던 2차대전의 특수성을 요약한 말이다. 해당 어록은 뉴올리언스의 국립 2차대전 박물관에도 새겨져 있다.] > '''오늘 [[에티오피아 제국|우리]]에게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일어난 일]]이 내일 [[연합국|당신들]]에게 [[제2차 세계 대전|일어날 수 있다]].''' > ---- > - [[하일레 셀라시에|하일레 셀라시에 1세]],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 패배한 후. > '''우리는 [[식민제국|그들]]과 같은 식민지도 없습니다. 우리는 [[국제연맹|그들이 독점하는 국제 동맹]]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너무나도 비좁은, 그래서 생활의 필수적 자원들조차 너무 부족한 우리의 제국,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개간되고 관리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계획 없이 이것을 해낼 수 없습니다. [[나치 독일|도이칠란트,]] [[나치식 경례|지크 하일!]]''' > ---- > - [[아돌프 히틀러]] > 수적으로 우세한 대부대를 강인한 의지로 이기는 것이 역사상 최초의 일은 아닐 걸세. 자네 병사들에 대해 말하자면, [[양자택일|자네는 그들에게 승리 아니면 죽음으로 가는 길밖에 보여 줄 수 없네.]] > ---- > - [[아돌프 히틀러]], [[1941년]] [[11월 4일]] [[엘 알라메인 전투]] 이후 [[에르빈 롬멜]]의 후퇴 요청에. > 그 운명적인 아침 열한 시에 나는 일종의 안도감을 느꼈다. 폴란드 문제를 놓고 독일과 집중적인 협상을 벌였던, 불안했던 열흘이 이제 다 끝났다는 안도감이였다. 무솔리니도 평화를 위해 애쓴 까닭에 간혹 일이 잘 풀릴 것처럼 보이기도 했건만... > ---- > - [[조지 6세]], [[1939년]] [[9월 1일]]. > 오늘 우리는 위대한 해방에 대해 하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대영제국의 가장 오래된 도시. 무자비한 전쟁의 손톱에 할퀴면서도 단 한 순간도 굴하거나 낙담하지 않았던 우리의 수도 런던에서 저는 여러분께 하느님께 대한 감사에 다 같이 동참하자고 당부드립니다. 온 유럽을 전쟁 속으로 몰고 갔던 적, 독일이 마침내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지만 극동에서는 [[옥쇄|아직도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잔혹한 적, 일본을 해결해야 합니다. [[몰락 작전|이를 위해 우리는 단단한 각오로 모든 자원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무서운 전쟁의 그림자가 우리 국민들의 단란한 가정으로부터 물러난 이 시간. 우리는 마침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하느님께 감사를 올려도 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 우리의 관심을 유럽의 평화와 함께 온 [[태평양 전쟁|전 세계적인 임무]]로 돌려야 합니다. > ---- > - [[조지 6세]], [[1945년]] [[5월 8일]] 오후 8시 35분. > 4년 전 우리 국민과 대영제국은 [[나치 독일|압도적인 적]]을 맞이하며 벽 앞에 홀로 서 있었습니다. [[영국 본토 항공전|우리 역사상 전례없는 시험이였지만 우리는 그 시험을 이겨냈습니다.]] 결연하고 헌신적인 우리 국민들의 정신이 환한 불꽃처럼 타 올랐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꺼트릴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불에서 피어오른 불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다시 [[노르망디 상륙 작전|최대의 시험에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이번 도전은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대의를 위해 최종적인 승리를 얻으려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용기 이상의 것이요, 인내 이상의 것입니다. > ---- > - [[조지 6세]], [[1944년]] [[6월 6일]]. > 작년 대영제국 국경일에는 제가 캐나다의 심장부인 위니펙에서 대영제국 국민 여려분께 연설을 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평화로웠습니다. 그 국경일에 저는 여려분께 우리 영연방 제국 수립의 기반이 되는 자유, 정의, 그리고 평화의 이상에 대해 말했습니다. 어두운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지만 저는 그 이상이 끔찍한 전쟁의 고통 없이도 좀 더 풍성하고 충만한 발전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굳게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성실히게, 그토록 끊임없이 막아 보려고 애를 썼던 악이 우리 위로 떨어졌습니다. > ---- > - [[조지 6세]], [[1940년]] [[5월 21일]]. > '''모든 걸 다 잃어버린, 간혹 가족도 잃어버린 이 불쌍한 사람들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 ---- > - [[조지 6세]], [[런던 대공습]] 직후. > '''우리는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위대한 정치인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아니면 역사상 가장 악랄한 범죄자로.[*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 ---- > - [[파울 요제프 괴벨스]], 그의 일기장에서. > 그 모든 긴장감 뒤에 온 불가사의한 안도감이며. 전 세계가 바라는 것은 [[아돌프 히틀러|오스트리아의 칠장이]]를 죽이는 것이다. > ---- > - [[라이오넬 로그]], 그의 일기장에서. > [[해리 트루먼]]: 스탈린, [[독소전쟁|산전수전 다 겪고]] 여기 [[베를린]]에 오니 [[야 신난다|꽤나 신바람이 나겠군요.]] > >[[이오시프 스탈린]]: '''[[차르]] [[알렉산드르 1세]]는 [[파리(프랑스)|파리]]까지 [[나폴레옹 전쟁|진군했소.]]''' > ---- > '''- [[포츠담 회담]] 당시 해리 트루먼과 이오시프 스탈린의 대화.''' > 세계의 역사에서 아돌프 히틀러 총통께서 위대한 지도자이자 위대한 아리아인이라 기록되신다면 그의 선택된, 충성스러운 기사단인 우리들은 영웅의 신화가 될 것이다. > ---- > - [[하인리히 힘러]], 1943년 베벨스부르크 성에서 친위대 대원들에게 한 연설. > 군인이란 모름지기 독일이라는 나라가 어떤 체제 하에 있든 조국을 등지려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체제와 다르다고 해서 조국을 등지는 일은, 자신을 희생하며 봉사하는 독일-프로이센 원칙에 위배되는 일이다. > ---- > - [[카를 되니츠]] > [[영국군|적]] 폭격기는 한 대도 [[루르]]에 도달할 수 없다. 만약 한 대라도 도달한다면 난 괴링이 아니다. '[[창씨개명|마이어]]'라고 [[내 손에 장을 지진다|불러라.]] > ---- > - [[헤르만 괴링]],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이후 베를린이 폭격을 맞자 독일인들은 '헤르만 마이어 씨...' 하면서 놀렸다고 한다-- >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 > - [[1941년]] [[6월 22일]] [[독소전쟁]] 개전 이후 소련군 통신문. 참고로 암호문이 아닌 '''평문'''으로 전달되었다.[* '왜 얼 타는 거야. [[고문관]]인가?' 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얼마 전에 있었던 [[대숙청]]으로 살아남은 장교들이 몸을 사렸던 탓에 굉장히 수동적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 중화 민족뿐만이 아닌 인류의 번영을 위해, 설령 실패할 위험이 있더라도 우리는 소중한 모든 것을 걸어야만 하는 때에 왔습니다. > ---- > - [[쑹메이링]], 1943년 미 의회에서. [[http://china.usc.edu/soong-mei-ling-%E2%80%9Caddresses-house-respresentatives-and-senate%E2%80%9D-february-18-1943|출처]] > [[일본 제국|황국]]이 총력을 기울여 승리를 결정지을 계기는 바로 오늘날에 있으니, 공들은 기꺼이 백성들보다 앞장을 서서 분노를 새로이 하여 단결을 굳건이 하고 떨쳐 일어나 적국의 야욕을 분쇄함으로써 황운을 무궁히 도울지어다. > ---- > - [[쇼와 덴노]] > [[1억 옥쇄|1억의 일본인들은 이제 조국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희생해야 한다.]][[정신승리|세계의 평화라는 제국의 목적을 위해 이러한 우국충절을 유지하는 한 우리는 미국도 영국도 두렵지 않다.]] > ---- > - [[도조 히데키]], [[진주만 공습]] 후 미국, 영국에게 선전포고하며. > '''우리는 3,000만 한국인 및 정부를 대표하여 중국⋅영국⋅미국⋅네덜란드⋅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 및 기타 제국(諸國)의 대일(對日) 선전 포고를 삼가 축하한다. 이것은 일본을 쳐부수고 동아시아를 재창조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다.''' > ---- > - [[1941년]] [[12월 10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http://contents.history.go.kr/front/hm/view.do?treeId=010701&tabId=01&levelId=hm_127_0020|대일 선전포고]] 서문. > '''거 [[나치 독일|독일]]이 이긴다고 하는데 [[베를린 전투|최후]]까지 보시오. [[승리의 날|최후의 승리는 소련에 있소.]] 일본이 삼국동맹에 따라 독일에 붙었으니 곧 조선인들 또한 징병되어 전선에 끌려갈 것이오. 그러나 일본이 [[양면전쟁|시베리아에 출병하게 되면 태평양 방면은 손이 딸리게 되고]] 또한 미국은 [[쇼미더머니(동음이의어)|군수공업이 발달하여 매월 수천 대의 비행기를 제작하고 있으므로]] 아무리 일본이 [[우주방어|철벽같은 방어]]를 펴도 수만 대의 [[B-29|적 비행기]]가 [[일본 본토 공습|일거에 내습하면]] [[버틸 수가 없다!|패배할 수밖에 없소]]. [[만주 전략 공세 작전|소련과 일본간의 전쟁]]도 머지않았소. [[일본 제국]]이 뭐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소. 일본 제국이 약해지는 그때야말로 [[서울 진공 작전|우리 조선 동포가 봉기해야 할 호기]]요.''' > ---- > - [[태평양 전쟁]] 당시 신원 미상의 조선 농부.[* 변은진. (2011). 유언비어를 통해 본 일제말 조선민중의 위기담론. 아시아문화연구, 22, 53-79][* 실제로 농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세계 국가의 위치와 당시 일어나던 전쟁과 국제정치 상황, 미국의 잠재력은 물론이요 예언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정확히 맞춘 것을 보아 상당히 견문을 넓힌 인물로 보인다.] > '''불쌍한 [[네빌 체임벌린]]은 히틀러를 [[뮌헨 협정|신용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폴란드 침공|틀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스탈린을 [[냉전|잘못 알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 ---- > - [[윈스턴 처칠]], [[얄타 회담]] 후. > '''우리가 잠시 동안 기쁨의 순간을 누리는 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아직 일본의 배반과 탐욕이 진압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더불어 일본 앞에 흘린 땀과 노력을 잊지 말도록 합시다.''' > ---- > - [[윈스턴 처칠]], [[1945년]] [[5월 8일]] 오후 3시. > 우리가 실패할 것은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소수의 국민들조차 그것을 끝낼 용기를 내지 못한다면, 후대의 역사가 독일 국민들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 ---- > - [[헤닝 폰 트레슈코프]] > '''히틀러는 가고, 독일과 독일 국민들만이 남았다.''' > ---- > - [[이오시프 스탈린]], 독일 항복 직후. > 미국에 있는 친구들이여. 나는 미국을 공정하게 평한다. 5만명의 병사들이 전쟁터로 향한다. 미국을 위해서뿐 아니라 인간성과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의 자유와 인간의 위대함을 위해서 말이다. > ---- >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유럽으로 파견되는 미군 수송선에서 쓴 편지에서.[* 그는 자유 프랑스군 소속 정찰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실종되었다.] > There are no innocent civilians. It is their government and you are fighting a people, you are not trying to fight an armed force anymore. So it doesn't bother me so much to be killing the so-called innocent bystanders. >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 그것은 그쪽 정부와 함께 우리와 싸우는 민중들이고 우리는 무장한 적군하고만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소위 죄 없는 방관자를 죽이는 것을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 ---- > - [[커티스 르메이]], [[일본 본토 공습]]을 기획하면서. > In Japan they would be set up like this: they’d have a factory; and then the families, in their homes throughout the area, would manufacture small parts. You might call it a home-folks assembly line deal. The Suzuki clan would manufacture bolt 64; the Harunobo family next door might be making nut 64, 65, or 63, or all the gaskets in between. These would be manufactured right in the same neighborhood. Then Mr. Kitagawa from the factory would scoot around with his cart and pick up the parts in proper order. > > 일본의 도시란 이런 모양이다. 공장이 있다. 그 옆에 민간인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은 자기네 집에서 조그만 부품들을 만든다. 그걸 [[가내수공업]]이라고 할 수 있겠지. 스즈키네는 64호 볼트를 만들고, 옆집 하루노보네는 64호, 65호나 63호 너트나 다른 잡동사니를 만드는 식이다. 그러면 키타가와 씨가 그걸 정리해다가 공장으로 가져가는 거다. > ---- > - [[커티스 르메이]], [[도쿄 대공습]] 직전 도쿄 상공에서 민간인에 대한 공습이란 상황에 죄책감을 느끼던 부하들을 향해서. > 그리고 나는 외치고 싶었다. [[러시아]], [[벨라루스|벨로루시]], [[폴란드]]의 땅 속에 누워 있는 이들, 우리가 거쳐 온 전장에서 영원히 잠든 이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동지들, 우리가 해냈소!''' > ---- > - 소련 종군 기자 바실리 그로스만 > '''[[덴노 헤이카 반자이|天皇陛下万歳!]]''' > '''천황 폐하 만세!''' > ---- > - [[히로타 고키]]를 제외한 [[태평양 전쟁]]의 A급 전범들이 사형되기 전 한 말 > '''지금은 새벽이다. 밤 3시다. 오전 3시다. 아아! 죽고 싶지 않다. 외롭다. 왜 이리 외로운 걸까.''' > ---- > - 하야시 타다오, [[교토제국대학]] 재학 중 [[카미카제]]에 징집당하자. > 나는 이 전쟁이 전 세계의 인류와 전 중국의 동포, 그리고 세계 문명 국가가 참가한 최후의 전쟁이 되기를 믿는 바입니다. > ---- > - [[장제스]], 1945년 8월 15일 [[중일전쟁]] 승전기념 연설. > 파리는 상처입었습니다. 파리는 파괴되었습니다. 파리는 고문받았습니다. 하지만 파리는 해방되었습니다. > ---- > - [[샤를 드 골]], 1944년 파리 해방 직후 연설. > '''유럽의 국제 관계는 [[로마]]와 [[베를린]]을 연결하는 선을 '추축(axis)'으로 하여 변화할 것이다.''' > ---- > - [[베니토 무솔리니]], 1936년. >'''[[쇼와 덴노|폐하]]는 [[도조 히데키|도조]]에게 속으셨다. [[만주사변]] 중 폐하는 군부에 반대 의향을 표명하셨다. 전쟁은 천황도 모르는 사이에 또 천황의 허가도 없이 시작되었다.''' > ---- > - 루스 베네딕트(1887 ~ 1948), 저서 국화와 칼 제2장 전쟁 중의 일본인 中. >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내지 않으면 진정한 [[우스타샤]]가 아니다. > ---- > - [[안테 파벨리치]] >9월 초하루 히틀러의 명령 한마디에 독일군이 폴란드로 쳐들어가고 뒤이어 영국, 프랑스에서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하게 되자 [[빌헬름 2세|폐제(廢帝) 카이저]]는 히틀러에게 사자(使者)를 보내어 충고를 하였다. > >[[제1차 세계 대전|6천만 명의 독일 국민을 죽음으로 돌려보내고]] 패전의 책임을 진 채 20년을 해와 달을 벗 삼아 지내는 동안 그는 회오(悔悟)의 한숨이 안 나오는 때가 없었다. 지구에 불을 질렀던 잘못을 그는 해와 달의 말없는 얼굴에서 깨달았다. 그리하여 히틀러에게 '그대는 제2의 카이저가 되지 말라. 나의 오늘의 생활을 그대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런 간곡한 충고를 하였다. > >노파심이라면 노파심일 따름이겠으나 대전의 불속에 직접 들어가서 경험한 선배로서 보내는 교훈이라면 후배인 히틀러로서는 응당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나 그는 들은 대꾸도 안 했던 것이다. 다만 카이저에 보내는 대답 대신으로 '진군이다'라는 것을 부르짖을 따름이었다. 히틀러는 [[제2차 세계 대전|왜 지구에 불을 질렀는가]], 위대한 방화자 히틀러는 무슨 야심으로 방화를 했는가. >---- > - 1939년 9월 23일 동아일보 5면, 구주전란(歐州戰亂)의 이모저모(一): 대전(大戰)의 방화자는 독일, 히틀러는 제2의 카이저가 될 것인가[[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39092300209205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39-09-23&officeId=00020&pageNo=5&printNo=6499&publishType=00020|#]] > '''무척 힘들었지만 돌이켜 보면 그마저도 아름다웠노라는 식으로 포장되는 것, 이것이 추억의 본질입니다.''' > '''예를 들어 '그 옛날 전쟁 중엔 이랬지. 그때가 좋았는데' 하던 것이 '훌륭한 전쟁이었어. 누가 뭐래도 위대한 시대였다고'와 같은 위험한 발언으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 애니메이션에서 전쟁을 묘사할 때도 제작자의 메시지를 담는다면 괜찮지만, 전쟁을 단순하게 묘사하기만 하는 것은 큰 죄악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 > -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 > 전쟁 중 '덴노 헤이카 반자이', '대일본 제국 만세'를 외치며 죽었다고들 하는데 '''난 그런 전우는 단 한 명도 보질 못했어요. 모두가 마지막 순간 [[어머니|오카상]]을 외치더군요.''' >---- > - '''[[제로센]] [[조종사]] 하라다 가나메'''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제2차 세계 대전, version=3010, paragraph=11)] [[분류:제2차 세계 대전]][[분류:어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